법보신문(2012.5.2) 천강에서 달을 보다 < 대승 선원장 철산 스님>   2012-05-02 (수)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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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선원장 철산 스님
새 소리에 ‘화’ 나는가? 스쳐 보낼 뿐 담지 마라
2012.04.30 17:15 입력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발행호수 : 1144 호 / 발행일 : 2012-05-02
수곽에서 떨어진 물에 체득
월산 스님, 직접 법호 내려
상대가 있으면 걸림만 많을 뿐
한 생각 접으면 경계도 사라져
 
 
▲철산 스님
 
 
봄이다. 꽃이 피니 새가 노래한다. 아니, 꽃 피고 새가 노래하니 봄이다. 장사(長沙)도 오늘 같은 날 산을 유람했을 터. 길을 나섰다.

문경 사불산 기슭에 선 소나무도 당당하게 새순을 내어 보였다. 붉은 천에 싸인 바위가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그 네 면에 부처님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도량은 저 앞의 일주문부터가 아니라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아니 사불산 품 안 전체가 도량이리라. 신라 진평왕 때인 587년에 창건된 대승사는 역사적 유서가 깊기도 하지만 성철, 월산, 청담, 자운 스님 등 내로라하는 선지식이 수행처로 삼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계선풍의 향훈이 짙게 배인 곳이고, 지금도 그 향훈을 더해가고 있는 도량이다.

대승선원은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 정진하는 여느 선원과는 달리 하루 14시간씩 가행정진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안거 기간 중 21일 동안은 하루도 잠을 안자고 화두를 드는 선승이 많다고 한다. 10분만 자리를 비워도 방석을 치워 버리는 대승선원임에도 이곳을 찾으려는 납자들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 도량이 갖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청련당(靑蓮堂)에서 대승선원장 철산(鐵山) 스님을 만났다. “먼 길 오셨다”며 차를 낸다. 봄볕에 몸을 맡기고 나선 길이었지만 한 가지 걱정이 앞서 있었다. 철산 스님은 원래 말씀을 많이 하는 선사가 아니다. 꼭 필요한 일언만 전하는 스님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인터뷰 자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차 한 잔 하면서도 ‘이 걱정부터 내려놓아야 할 터인데’하지만 이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미리 간청하는 수밖에.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미소를 보였다. 절반의 성공이다.

스님의 법명은 탄공이고 법호는 철산이다. 법호는 불국사 조실 월산 스님이 직접 내려 주셨다. 궁금했다. 월산 스님과의 법거량이 말이다. 스님은 또 한 번 미소를 보인다.

“수곽에 떨어지는 물을 보고 스쳐가는 바 있어 한 말씀 드렸지요.” 기다렸다. 철산 스님은 무엇을 말씀드렸는지, 이에 대해 월산 스님은 무어라 하셨는지. 침묵이다. 벌써 새로운 차가 다기에 담긴다. 잠시 돌아가야 한다.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차도 스님이 재배해 덖은 차다. 녹차도 만들고, 발효차, 뽕잎차, 민들레 차도 만든다. 일주문 인근엔 가마도 있다. 문경에 주석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돼 아예 흙을 가져와 다섯, 여섯 명의 도공과 함께 도자기를 빚고 굽는다. 그러니, 지금 들고 있는 이 잔도 스님의 손길이 배어 있다.
스님은 1가구 1다기(1家口 1茶器) 갖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담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집에 다기가 있으면 언젠가는 차를 마실 겁니다. 혼자 있으면 자신과 대화를 할 것이고, 누군가 있다면 그 누군가와 대화를 하겠지요. 말 많은 세상 같지만 실은 소통이 부재한 세상입니다. 작은 노력이라도 해 봐야지요.”
 
 
▲대승 선원장 철산 스님은 이곳 청련당(靑蓮堂)에 주석하고 있다.
 

2007년 철산 스님은 대승사 영농법인을 세웠다. 이 법인을 통해 각종 장과, 도자기, 차, 조청, 산양삼 등을 판다. 관람료를 받지 않는 대승사가 절 살림을 꾸려가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그러니 철산 스님은 선원장과 주지 두 몫을 해 내야만 한다. 해제 철은 그나마 낫지만 결제 철엔 선방 스님들과 똑 같이 정진한다. 여기에 재가선원도 돌봐야 한다. 수행하고, 차 덖고, 도자기, 옹기 빚고, 장 담고, 선원 돌보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텐데 지난 10여 년 동안 대승사 중창불사도 일궜다. 한 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대승사는 변모해 왔던 것이다. 올해 가을이면 ‘무문관’도 개원한다. 초인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대승사 대중과 함께 하는 일이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어려울 거 없습니다!”

전각 불사 하나만 해도 녹록치 않을 터인데 왜 어렵지 않겠는가. 내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철로 된 산이기에 가능한 일일까? 다실에 걸려 있는 족자로 시선을 돌렸다.

鐵牛無語不幾歲(철우무어불기세)
山水淸音見古人(산수청음견고인)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철산 스님이 지은 시 한 수로 보였다. 애써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다. ‘무쇠 소 말 없으니 세월과는 관계없고/ 산수의 맑은 소리에서 고인을 본다.’ 철산 스님은 ‘어떻게 해석했느냐’ 묻지도 않는다. 일언이 떨어질 뿐이었다.

“철로 된 소 본적 있습니까? 정수를 말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기회가 왔다. 월산 스님과의 인연을 좀 더 풀어볼 수 있는 틈이 생긴 것이다.
“한 때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가 있었어요. 조실 스님(월산 스님) 찾아갔지요. 종이에 원을 그려 보이셨어요.”
남전, 자복 선사도 일원상을 그려 보인 바 있다. 철산 스님은 어떻게 했을까? 일원상 그려진 종이를 치워 버렸다. 그 결과가 궁금하다.

“월산 스님은 ‘아니야, 아니야’하시며 손사래를 치셨어요.”
아직 멀었다는 뜻이니 더 정진할 수밖에 없었다. 정진하면서 선지식들을 만나 법거량을 나눴다. 때로는 멱살도 잡고, 잡히기도 했다. 어느 날 ‘서상원’(瑞像院)을 들고 월산 스님을 찾았다.

조주 스님이 남전 선사를 참문해 선법을 체득한 인연이 담긴 게 서상원이다. 조주 스님이 처음 남전 스님을 친견할 때 남전 스님은 방장실에 누워 있었다.

“어디서 왔는가?” “서상원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을 보았는가?” “상서로운 모습은 못 봤지만 여래를 친견했습니다.” 이에 남전 선사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주를 맞이하고 그 유명한 ‘평상심이 도’라는 법문을 들려준다. 이에 조주는 깨닫는바가 있었다.
 
세상 일 ‘禪’ 아닌 것 없어
평상심에서도 무경계 노력
말 많지만 소통없는 세상
차 한 잔 속 대화 나눠야

철산 스님은 어찌 했을까? “말씀을 드렸는데 아니라 하셔요. 다른 선지식분들은 ‘맞다’하시는데 조실 스님만 ‘틀리다’하시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지요.”

더 정진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길을 걷는데 수곽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숙성된 근기가 시기적절하게 인연을 만나면 소식이 있다는 기연(機緣)이 닿았던 것일까? 월산 스님을 다시 찾았다. “내가 3년 만에 한 일을 너는 3개월 만에 해냈구나!”하시며 당시 돈 50만원을 주시며 적멸보궁을 참배하라 일렀다고 한다.
법호도 내렸다. 철로 된 산.

“조실 스님이 월자 산자이신데 제가 어찌 철산이란 법호를 쓸 수 있습니까 했지만 월산 스님께서는 ‘받을 만하다’하시며 법호를 내리셨습니다. 그래 철산이 되었지요.”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철산 스님은 무어라 하셨을까? 새로운 차가 또 다기에 담긴다. 답답해하는 걸 눈치 챘는지 한 말씀 더 보탠다. 사족인 줄 알면서도 내 놓으니 자비심의 발로다.

“선가에서는 조주의 3전어, 운문의 3구를 귀하게 여깁니다.”

조주의 3전어. 조주 스님이 대중에게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도록 하는 세 가지의 법문. ‘쇠 부처(鐵佛)는 용광로를 거치면 녹아버릴 것이고, 나무 부처(木佛)는 불에 타 버릴 것이고, 진흙 부처(泥佛)는 물에 녹아 풀어진다.’
운문의 3구. 함개건곤(函蓋乾坤), 하늘을 덮고 땅을 감싼다. 절단중류(截斷衆流), 모든 흐름을 한 순간에 단절한다. 수파축랑(隨派逐浪), 파도를 따라 흐름을 같이한다.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 물레방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어봄직 하다.
 

순간 조주 3전어와 운문 3구를 관통하는 게 하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참된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참된 부처가 말을 꺼낸다면 운문의 3구를 모두 포함해야 할 것이다.

철산 스님이 굳이 자신이 한 말을 전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내 말은 내 말일 뿐! 직접 찾아보라.’ 무언의 암시가 아니었을까.

의문은 또 남는다. 어찌해야 한 화살로 두 관문을 다 뚫을 수 있을까? 묻는다고 답하고, 답해 줬다 해서 알 수 있는 일 또한 아니니 여기서 접어야 한다. 차 한 잔 마실 뿐이다. 어줍지 않게 하나 더 여쭈어 보았다. ‘차는 차고, 선은 선인데 어찌 일여합니까?’ 간단명료한 답이 떨어졌다.

“선 아닌 게 어디 있습니까?” 되물음에 답이 있으니 입을 다물었다.

“공부는 선방에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사불산을 오르는 길목에서도, 직장에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조주의 ‘평상심’을 뜻함이라. 이번엔 철산 스님이 물었다. “새소리에 화가 납니까?” 일평생 새 소리 듣고 화난 적은 없다.

“새와 꽃은 당신을 힘겹게 하지 않지요. 새소리도 듣는다지만 스쳐 보낼 뿐이고, 꽃향기도 맡는다지만 이 또한 스쳐 보낼 뿐입니다. 상대가 있으면 걸림이 있습니다. 나와 너의 경계가 사라지면 걸림은 없습니다. 신심명에서도 ‘한 마음 일으키지 아니하면 만법이 깨끗하다’하지 않습니까!”

비온 뒤 내어 보인 산처럼, 스님의 일언이 청명하기만 하다. 그렇다. 경계도 한 마음에서 일어남이니 이를 다스려야 할 터. 그러나 철산 스님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으니 선원이나 토굴 수행을 서둘지 말라 한다. 다만 진실한 마음으로 원력을 세워보라 권할 뿐이다.

재가불자라면 대승사 템플스테이를 꼭 한 번 참여해 보라 권하고 싶다. 산사 운력도 경험할 수 있지만 흙을 빚어 다기도 구워볼 수도 있는 게 대승사 템플스테이 장점이다. 손수 만든 다기는 본인이 가져간다. 차를 딸 때 입산하면 차도 덖어볼 수 있다. 장을 담글 때 오면 장도 직접 담아볼 수 있다.

대승사 템플스테이 속엔 ‘평상심이 곧 도’가 스며있다. 여기에 철산 스님의 감로수가 더해지니 금상첨화다.
장사는 ‘녹음방초를 따라 갔다가 낙화를 쫓아 돌아온다’했는데 그 경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스님이 낸 모든 차에서 연꽃 향을 맡아볼 수는 있었다. 발걸음이 가볍다. 

채한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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