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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전체 높이는 32㎝, 무릎 폭 23㎝에 어깨 폭 16㎝, 머리높이가 11㎝ 밖에 되지 않는 소형 목불로서 개금원문(改金願文)에 따르면 약 100년 전에 최후로 개금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때의 도금으로 인하여 불상 본래의 모습에 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은 일반적인 계란형으로서 조선시대 후기 불상양식과는 약간 다르고, 양 어깨를 감싼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비교적 단조롭게 처리되었으며, 목부분에 삼도가 확연히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도의 근거로 고려시대까지 소급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는 두터운 도금이 입혀진 현상으로는 속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윤필암 경내 사불선원의 지감(종이로 만든 감실(龕室) - 부처님을 모시기 위한 작은 공간)에 모셔져 있다. 일반적으로 금당 건물 내에 감실에 불상을 모시는 경우가 보편적인데 반해 윤필암의 불상은 소형인 관계로 종이로 만든 지감에 모셔진 것으로 추정된다.
검정색 지감은 불상 조성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이 되나 이 역시 그 제작 시기가 오래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불상의 바닥 부분에는 복장 장엄공(腹藏 莊嚴孔, 9×13.4㎝)이 판목版木으로 밀폐되어 있고, 이는 3개의 철정(鐵釘)으로 고정되었는데 그 내부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복장 장엄공 외부에는 2회에 걸친 개금원문(改金願文)이 주서(朱書)된 다라니(陀羅尼)로 밀봉(密封) 되었으나 몇해 전 조사 후 복원이 되었다. 원문은 1851년(철종 2)의 개금원문(改金願文, 51.4×60.6㎝)과 1908년(순조 2)의 개금원문(32.3×39.3㎝) 2종이므로 불상의 조성연대는 1851년이라 할 수 있다.
이 불상은 약 100여년 전 마지막으로 도금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고 도금으로 인하여 불상 양식에 일부 변화를 주고 있다. 다만 계란형의 얼굴 등의 형태에서 불상의 형식은 그 조성이 더욱 올라갈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그 상한(上限)의 정확한 연대는 불상 복장(腹藏)의 개비(改備)가 첩경이겠으나 이것이 불가능한 현재로서는 위에 소개된 원문(願文) 및 불상의 양식에 의거 조선시대 중기, 15~16세기경의 조성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소형의 목조불상이 전국적으로 희귀한 현실을 감안해 볼 때 매우 귀중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또 사찰에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에 의하면 1950년대 중반 어느 날 한밤중에 도난당하였으나 부처님이 현몽하여 “절은 지키지 않고 잠만 자느냐”는 질책에 여러 스님들이 깨어나 살펴보니 불상을 도난당했는데 도둑은 다행히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담장 밖에서 밤새 헉헉거리고 있으므로 이를 붙잡아 불상을 도로 찾았다는 일화가 있다. 이 때 불상 좌수(左手)의 끝 부분이 일부분 부러져 수리되었을 뿐 다른 손상은 없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00호(1997.12.19)로 지정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