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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위로 가기대승사(大乘寺) 윤필암(潤筆庵)에 대하여는『상산지(商山誌)』『대승사사적(大乘寺事蹟)』『, 동문선(東文選)』등에 비교적 자세한 기록이 있다. 먼저 대승사사적에 따르면 윤필암은 고려 우왕 6년(1380) 각관대사(覺寬大師)가 창건하였다 한다. 또한『동문선(東文選)』의 이색기(李穡記)에는 이때 각관(覺寬)과 함께 찬성(贊成) 김득배(金得培)의 부인 김씨(金氏)에 의하여 조성되었다고 하였으며, 고려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출가처(出家處)임을 밝히고 있다. 다시『대승사사적』에는 조선인조 23년(1645) 서조(瑞祖), 탁잠(卓岑), 양사(兩師) 중건, 영조 41년(1765) 창명장로(滄溟長老) 중건이라 하였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족자나 액자의 형태로 만들어 걸어두는 불화의 한 유형이며, 보통 사찰 전각의 불상 뒤에 모셔두는 후불화가 대부분이다.
이 후불탱화는 본래 윤필암 선실(禪室)에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후불탱화로 짐작되나 도난을 우려하여 현재의 요사(寮舍)인 큰방의 탁자에 하반부를 고정하여 안치하고 있다. 이 탱화가 아미타후불탱화임은 도상에 의하여 알 수 있는데 중앙에 아미타불과 좌우에 관음(觀音), 세지(勢至), 지장(地藏), 미륵(彌勒) 등 8대 보살을 시립侍立하였고, 상부의 좌우에 각각 5구씩 10대 제자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네 곳의 가장자리에는 우측의 후방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동방 지국천(東方 持國天), 남방 증장천(南方 增長天), 서방 광일천(西方 廣日天), 북방 다문천(北方 多聞天) 등 4천왕을 배치해 놓았다. 탱화의 크기는 가로 274cm 세로 280㎝로 탱화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그림의 색상이나 필치에도 손상이 없는 수작이라 하겠다.
윤필암후불탱화 화기 (潤筆庵後佛幀畵 畵記)
道光十年庚寅八月二十四日大乘寺潤筆庵後佛幀畵成仍奉安緣化秩 證明 密庵大師 高山宗
□誦呪比丘□□金魚無鏡□□ 德□ 震□ 閏□持殿比丘覺□奉齋 大□ 智□ 供養主 讚
□ 性□ 鐘頭 德□ 茶角 道□ 淨桶 □□ 片手宗□ 化主 信□ 德□ 化主比丘尼 取□別
坐 德□ 山中秩 懶庵 映□ 陽谷演□ 喚峰 宗□ 僧統 有□ 化主秩 婆幀 權春達 子丁元 尙
宮庚寅生□□壬子生都氏 子金發成 遺服 子利善 子一大 孫茂得 黃有才 鄭彦聖 比丘定性
本庵秩 密庵大師 定宇 信旻 宗喆 寬悅 觀性 碩閑 德信 德� 道允 戒伯 海明 海煥 就日 妙
眼 德洪 童子服滿 戊寅 擔柴孫雲得
위의 화기중 도광10년은 조선시대 순조 20년(1830)이며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조성 후 상당기간 동안 후불탱화가 없이 지내다가 1830년에 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한 것으로 짐작된다. 1998년 4월 13일자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8호로 지정되었다.
*이미지 출처 : 국가유산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