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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위로 가기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극락전 주불로 모시고 있는데 과학적 조사(성분분석, X-ray)를 통해 불상(높이 87.5cm, 무릎폭 63cm) 두부에서“大德五年辛丑五月二十日 宮闕都監錄事別將丁承說 印出」”의 묵서가 적힌 기록이 발견되어 연대는 1301년(대덕5년, 고려 충렬왕 27년)에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 일체보협인다라니(1292년)와 태장경만다라에도 연대가 있었고, 묵서(墨書)가 적힌 향낭(香囊) 등도 출토되었다.
이 다라니를 포함한 복장물은 처음 불상을 제작하였을 때에 봉안한 것으로 추정되며 아미타여래좌상이 14세기 초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엑스레이 촬영 결과 정상계주 역시 신체와 같은 동銅으로 제작되었음이 밝혀져 현재 상태의 정상계주 표현이 원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13세기 말과 14세기의 고려불상이 대체적으로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 불상계통이 개성지역에서 유행하였던 것에 비해 극락전의 아미타여래불상은 그 이전 시기인 고려중기 불상의 전통을 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리고 이 전통은 역시 14세기로 추정되는 서울 수국사의 아미타불상이나 청양 장곡사의 불상으로 전개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으로 평가된다. 이 불상은 묵서명 다라니를 통해 1301년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고려후기 불교조각사연구에 기준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특히 이 시기 유행한 금동불상 중에서 조형적 완성도가 비교적 높고 보존 상태 또한 양호하다.
또한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복장에서 수습된 다라니 12매는 고려 충렬왕 27년(1301)경에 판각 또는 인출되어 금동아미타불 조성 시에 불복장에 봉안되어진 것으로 ‘大德五年五月二十日 宮闕都監綠事別將丁承說 印出’의 묵서명은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의 조성연대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아미타불 조성에 있어서 필수적인 다라니로서 흩어져 있는 불복장 일괄유물을 체계화시키는 데 보완이 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으므로 불상과 함께 지정하여야 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